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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과 나의 고백”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며-
선교한국수련회 (2004.1.15)
내가 살아온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사랑하는 후배 젊은이들에게 “나의 삶과 나의 고백”의 말씀을 몇 마디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사도 바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대신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고전15:10). 그리고 모세가 고백한 대로 지난 “사십년[66년] 동안에 나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신8:2). 그러나 나 자신을 바라볼 때에는 바울이 마지막 편지에서 고백한 것처럼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딤전1:15). 바울이 고백한 대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아직 까지 하나님의 종이란 고귀하고 황송한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고백한 대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볼 때에는 비관주의자가 되어 절망할 수 밖에 없지만, 하늘과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때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서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첫째 나는 어릴 때부터 순교자들의 피와 생명을 체 받으며 살았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안주와 신의주와 평양에서 지내면서 일제와 공산치하에서 순교의 피를 흘린 신앙의 선배들이 전수해 준 신앙의 유산을 몸으로 체 받으며 살았습니다. 신의주는 한경직 목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일제 하에서 고난과 핍박을 받은 곳이었고 평양은 주기철 목사님 김화식 목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일제와 공산치하에서 순교의 피를 뿌린 곳이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일 성수를 고수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로 작정했습니다. 평양제오인민학교에 다닐 때 주일날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교회에 간다고 거의 매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곤 했습니다.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신앙을 굽히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 교회(한경직 목사님이 목회하시던)와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목회하시다가 공산당에 의해 투옥되셨습니다. 나는 제오인민학교(5년제)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쳤는데 구두시험 중 앞으로 일요일에도 학교에 등교하겠다고 약속하면 입학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난 후 나는 후회와 번민으로 괴로워했습니다. 평양 사동 탄광에서 복역 중이신 아버지를 찾아 갔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서울로 가서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만 11살 되던 1948년 8월초 사랑하는 어머님과 세 동생과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뒤에 두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랑하는 맏아들을 ‘버리는’ 희생을 감수하신 것이었습니다. 38선을 넘던 날 밤 우리 일행은 경비원들에게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서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위협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발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앞뒤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을 뚫고 30분 이상을 달렸습니다. 결국 나는 혼자서 남쪽 땅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훤히 밝아 오는 새벽녘에 어느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누구였던 지를 알지 못하는 어떤 청년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나를 서울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던 이모님 댁에 살면서 방산국민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게 되었고 영락교회에 다니며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가기 원하는 서울 중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밤에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비교적 적극적이고 모험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지닌 소년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순교자들의 피와 부모님의 희생적인 ‘버림’의 사랑으로 되었습니다.
둘째 나는 중 고등학생 때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회개의 신앙을 전수 받았습니다.
서울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6.25가 발발하여 나는 부산에까지 피난 갔다가 다시 대구로 올라와 3년간 그곳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며 신앙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 당시 이성봉 목사님의 집회를 모조리 좇아 다니며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집회 때마다 재미있고 은혜로운 말씀을 전했고 특히 새벽 시간에는 강력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곤 했는데 나는 그 말씀들을 헐떡거리며 받아먹곤 했습니다. 토요일 새벽에는 안수기도를 받으며 나의 ‘소명’을 다짐하곤 했습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울고등학교 3년 과정을 마치며 교회는 김치선 목사님이 담임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녔습니다. 한국교회의 예레미아라고 불리던 김치선 목사님은 새벽기도회 시간은 물론 설교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며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셨는데 그 메시지들이 나의 신앙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재료들이 되었습니다. 나는 김치선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좇아 다니며 은혜를 받곤 했는데 서울의 삼각산과 관악산은 물론 대구의 주암산까지 좇아 다니곤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과 함께 중 고등학생 시절 나의 신앙 인격을 형성해 주신 신앙의 은인들이고 선배님들이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신앙의 선배들의 가르침과 감화 감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셋째 나는 대학생 때 신앙의 친구들과 함께 새 생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 세 분 목사님들(한경직, 김치선, 명신홍)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무엇을 전공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역사학이나 영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나는 한경직 목사님의 조언을 따라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4년간의 역사공부는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주었고 나의 안목을 넓혀 주었습니다.
나의 대학생 시절에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고3과 대1 시절에 1년 반 동안 왕십리에 가서 노방 전도를 하며 교회를 세운 일입니다. 신학공부도 하지 않은 내가 주일날 설교까지 하며 일년 반 동안 젊음의 정열을 쏟아 바치며 전도를 한 결과 50여명의 장년과 100여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새로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이름을 한양제일교회라고 했는데 비록 초라한 천막교회 였지만 교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대학교 4학년 때인 1960년 여름에 서울대학교 문리대 안에서 “새 생활운동”을 일으킨 일입니다. 1960년 4. 19가 일어나던 때 한국의 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에 쌓여 있었습니다. 4. 19 직후 서울 문리대 교정 안에는 한편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국민 계몽운동 발대”가 진행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5, 6명의 기독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새 생활 운동"이 태동되고 있었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안되겠다.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이 시대에 우리 4학년 신앙의 친구들은 과연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몇몇 친구들이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서 진지하게 논의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손봉호, 김상복, 이형기, 이명섭, 김명혁 등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합의한 결론은 “새 생활 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부조리한 실태를 조사한 뒤 문리대 소 강당에서 그것을 발표한다고 공고했습니다. 소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 밀수로 수입되는 커피와 양담배의 일년분 밀수액이 대전시 인구가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 값과 같다는 등의 조사 내용을 발표하자 학생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문리대생 수백 명이 방학이 시작되던 6월부터 거의 한달 동안 매일 새벽부터 함께 모여 밤늦게까지 다방과 공원과 시장과 극장과 댄스홀과 요정과 국회 등을 찾아 다니며 “새 생활 운동"을 펴 나아갔습니다. 새 생활 운동은 사회 변혁을 내 세웠지만 근본적으로는 윤리 운동이요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새 생활 운동이 전국의 대학으로 확산되었고 나중에는 장 면 정부의 “신 생활 운동” 박정희 정부의 “새 마을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젊은 시절 신앙의 친구들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신앙의 친구들과 무슨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이 한 평생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신앙의 친구들과의 교제와 협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넷째 나는 신학과 역사신학을 공부하면서 역사적 안목과 양면성 그리고 삶의 지혜를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당시 용산에 소재한 총회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교수진은 박형룡, 명신홍, 한철하, 최의원, 오병세 등의 교수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나는 특히 한철하 박사님으로부터 학문적 도전과 감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총회신학교에서 세 학기 공부를 마치고 미국 필라델피아의 훼이스 신학교로 유학하여 신학수업을 계속했습니다. 무턱대고 돈 백 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으며)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넉넉하게 했습니다. 당시 훼이스 신학교의 교수진은 그래도 좀 좋은 형편이었으나 나의 기대에 많이 어긋났습니다. 그러나 훼이스 신학교에서의 유학생활은 넉넉하고 즐거운 시절이었습니다.
1964년 훼이스 신학교를 졸업한 후(B.D. 취득)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1년 반 동안 석사과정(Th. M.)에서 교회사를 전공했습니다. 석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신의 도성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역사이론」이었는데 이는 후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전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후 예일대학교 신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S.T.M.)에서 역사신학을 계속해서 전공했는데 한 해 동안의 수학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역사신학 교수 자로슬라브 펠리칸 박사의 강의들은 명강의 중의 명강의였고 그 분은 내가 만난 교수들 중의 교수요 학자들 중의 학자였습니다. 펠리칸 교수의 지도를 받아 쓴 석사학위 논문의 제목이 「교부들에 나타난 이사야서의 메시야적 해석」이었는데 져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키프리안이 이사야서의 예언적 부분들을 다루고 해석하는 공통적 특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일대학에서 수업하던 시절 교회사의 대가인 라토렛 교수와 베인톤 교수와 친분을 갖게 된 것은 극히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 중 여름 방학에는 물론 학기 중간에도 틈틈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훼이스 신학교에서는 건물 청소, 식당 웨이터 일, 인쇄소 일 및 건물 페인트 하는 일을 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시절에는 화장실 청소, 식당 웨이터 일, 화학 도금 공장 일, 정원 가꾸기 일, 주택 페인트 일,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판매 일 및 접시 닦기와 백화점에서 판매원 일등을 했습니다. 예일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주로 학교 도서관 일을 했고, 아이오와에서 공부할 때는 주로 주택 페인트 하는 일을 했습니다. 요사이는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공부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미국에서 일하던 일들 중 주택 페인트 하는 일과 정원 가꾸는 일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열 아래서 이층 또는 삼층 주택 벽의 낡은 부분들을 베껴 내고 보수한 후 그곳을 깨끗하게 페인트 하는 일과 넓은 정원의 풀을 깎고 흐트러진 화단을 깨끗하게 새로 단장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하다 말고 풀밭에 들어 눕곤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낡은 집이 새 집으로, 흐트러진 정원이 단정한 정원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일대학 신학원에서 석사학위(S.T.M.)를 취득하고 졸업할 때 에드워드 흄 휄로우십을 받았는데 그 상금의 일부를 총신대학에 장학금으로 일부를 개척교회 보조로 보냈습니다. 몇몇 학교 박사 과정에 입학원서를 제출했으나 대부분 거절 당했고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 입학이 허락되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에 입학은 허락되었지만 장학금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장학금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해당되기 어렵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조건 아이오와시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종교학과 주임 포렐 교수를 만난 다음 "무슨 장학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나에게 해당될 수 있다"고 해서 이렇게 달려왔다고 했더니 그러면 할 수 없이 그 장학금을 나에게 줄 수 밖에 없다고 해서 나는 그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어떤 때는 무작정 모험적으로 돌진해 나가므로 나의 일생을 헤쳐 나가곤 했습니다.
나는 아이오와 시에 있는 동안 광활한 옥수수 밭과 연못들로 이어진 자연을 즐길 수 있었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인 학생 가정들과의 교제를 증진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오와 시에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인 교수와 공부하는 한인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이 30여명이 있었는데 한인들 사이에 별다른 교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인들이 만나는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운동회, 야유회, 회식 등을 마련했고 "아이오와 소식지"를 만들어 한인들간의 경조사를 알리며 교제를 증진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한인회가 만들어 졌고 수년 후에는 한인교회까지 만들어 졌습니다. 나는 한인들뿐 아니고 외국 학생들과의 교제를 증진하는 일도 도모했는데 많은 즐거움과 성과가 있었습니다. 인생은 만남이고 나눔인 것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주말마다 시카고로 드라이브하여 왕래하며 데이트에 열중하기도 했습니다. 데이트에 열중하다 보니 한 두 과목의 점수가 낙제 점수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6개월 동안의 데이트 후 나는 결혼에 꼴인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 결혼 반지 하나 살 돈도 없었으나 그렇다고 아무 주저함이나 미안함도 없이 무작정 결혼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의 콘세트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지만 재미가 있었습니다. 조그만 텃밭에 꽃도 심고 토마토도 심었으며 주말마다 이곳 저곳 호수를 찾아 다니며 낚시도 함께 즐겼습니다. 결혼 일년 후 귀여운 딸을 얻었습니다.
나는 아이오와 대학에 머물면서 아이오와 대학, 아퀴나스 신학원, 드뷰크 장로교 신학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박사학위 프로그람에 등록을 하고 리써치 위주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매고니글, 포렐, 드러먼드 교수 등의 지도를 받아 완성한 철학박사 학위(Ph. D.) 논문의 제목은 「두 도성에 대한 어거스틴의 교훈에 나타난 종말관의 기능」이었습니다. 학위논문에서 내가 취급한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종교적 욕구(visio Dei)의 성취 가능성의 관점에서 본 현세에 있어서 인간 존재의 의미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인간이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발전해 가는 역사의 한 점을 점유하고 있는 데서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두 도성에 관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두 도성은 미래적이면서도 현세 실현적인 것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종말론적 역사관의 특징은 양면성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양면성은 어거스틴의 두 도성에 대한 개념, 현세관, 교회관 및 국가관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어거스틴의 “역사적 안목”과 "양면성"은 나의 평생의 사고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신앙의 선배들의 가르침과 특히 역사적 안목과 양면성의 진리를 터득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섯째 나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고난의 의미를 습득하고 고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972년 12월 학위논문을 완성한 후 1973년 1월 예일대학으로 다시 와서 리써치 펠로우 로 한 해를 지냈습니다. 긴장과 억압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독서와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바로 그 때 뉴욕을 방문한 조동진 목사님이 나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한국교회 선교의 선구자인 조동진 목사님과의 만남은 나의 연구와 사역의 방향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 목사님은 내가 유학을 마친 후 후암교회에 교육 목사로 오라는 말씀과 귀국하기 전에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에 가서 선교학을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본래 남의 말을 쉽게 잘 듣는 터라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 해 연말 나의 생애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73년 11월 11일 나의 둘째 아이 철원이가 뇌수정이란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1973년 12월 말 아내와 함께 3살 된 혜원이와 생후 1개월 된 철원이를 데리고 대륙을 횡단해서 캘리포니아 파사데나 풀러 신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여행 도중 철원이의 병세가 악화되어 시속 140여 마일 속도로 30여 시간을 5분만 쉬고 계속해서 서부 사막지역을 달려서 로스안젤스 췰드런스 호스피탈에 도착했습니다. 입원을 시킨 후 우리는 풀러 신학교 기숙사에 여장을 풀고 1974년 1월부터 풀러 신학교에서의 연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철원이의 이야기를 계속하면 생후 2개월 된 철원이가 뇌 수술을 하기 전 의사가 전해 주는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수술 후 철원이가 장애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철원이가 장애아가 된다면 내가 철원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의 깊은 고민과 기도 끝에 나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철원이가 내 아들이란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나의 사고의 변화는 사람들을 보는 나의 시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나는 본래 착하고 아름답고 신앙이 좋은 사람들을 좋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당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덜 착하고 덜 아름답고 덜 신앙이 좋은 사람들도 꼭 같이 사랑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너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사람들을 차별하느냐?" 라는 준엄한 책망이 들려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손을 들고 항복했습니다. 그것이 나의 첫 목회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는 조동진 목사님의 권면으로 1974년 1월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에 가서 리써치 어쏘우시에이트로 8개월을 지내며 선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풀러 선교신학원에서의 선교학 수업은 나의 학문연구와 사역 방향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는 신학과 사역을 선교적인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또한 신학이라는 학문을 인간의 삶의 처지 즉 목회 현장과 연결시키며 보기 시작했습니다. 철원이의 삶과 죽음은 나의 사역에 이와 같은 의미를 실천적으로 부여하는 거름의 역할을 했습니다. 만 1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1974년 10월에 귀국하여 후암교회의 교육목사와 총신대학의 강사 그리고 조교수의 사역을 시작했는데 나는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특히 불치의 암 환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위로 목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철원이의 삶과 죽음을 통한 고난의 의미를 터득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섯째 나는 목회를 계속하면서 인생이란 만남과 나눔과 기쁨이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1974년 귀국 후 목회와 신학교 강의를 동시에 해 왔습니다. 후암교회 영안교회 그리고 강변교회에서의 목회와 총신대와 합동신학교에서의 강의를 한 평생 함께 해 왔습니다. 신학과 목회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나는 개인적으로 목회자와 신학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며 두 길이 나에게 동시에 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지난 30여년 동안 목회와 신학교육을 계속해 오면서 목회는 물론 인생이란 만남과 나눔과 기쁨이란 사실을 발견했고 좀 더 상세하게 기술하면 목회나 인생이란 일곱 가지 길을 걸어가는 “칠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내가 발견한 “인생 칠도” 또는 “목회 칠도”를 간단하게 기술합니다.
첫째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본토 아비 집을 떠나 타향에서 나그네의 생활을 했습니다. 야곱도 요셉도 나그네의 생활을 했고 모세도 고향을 떠나 애굽과 미디안 광야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선지자나 사도들 중에 나그네의 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예수님이야말로 천국을 떠난 나그네의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은 나그네의 생활을 하므로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가문과 지역과 민족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지구촌 여러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재물욕에서 벗어나 가볍게 살 수도 있게 되고 땅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하늘을 바라보며 가볍게 여유롭게 살게 됩니다. 나그네 의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인생은 만남입니다. 나그네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하나님 만남과 사람 만남입니다. 나그네의 길은 외롭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나그네가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을 만날 때 그의 인생이 바꾸어집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저들의 삶이 바꾸어졌습니다. 저들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저들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의 삶도 바꾸어졌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과 수가성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녀의 삶과 수가성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만남이 때로는 귀찮게 보이지만 사실은 즐거움이요 기쁨입니다. 만남을 확장하는 것이 인생이고 목회이고 행복입니다.
셋째 인생은 나눔입니다. 만남이 깊어지려면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소유적이고 탐욕적입니다.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나눔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나눔을 실천할 때 피차 사랑과 기쁨과 부요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은 나눔의 삶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삶도 나눔의 삶이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나누었고 겉 옷과 속 옷을 나누었고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나눔과 도르가와 고넬료의 나눔은 저들 자신과 도움 받은 사람들을 기쁘게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슬픔과 아픔과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목회이고 행복입니다.
넷째 인생은 버림입니다. 나눔이 진정한 나눔이 되려면 버림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소유와 명예와 생명에 대한 무한한 집착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어리석고 추하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멋진 인생, 자유롭고 여유 있는 인생은 버림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버림의 삶이었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하늘의 영광도 하늘의 부요함도 다 버리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재물과 몸을 버렸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버리는 삶을 살았는데 그가 죽었을 때 한국의 슈바이쳐가 죽었고 작은 예수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인생은 버림이고 참된 신자와 목회자의 삶은 버림입니다.
다섯째 인생은 기쁨입니다. 위의 네 가지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팔 복을 가르치신 다음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주님 때문에 능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했고 바울은 환난 중에서도 기뻐했으며 베드로는 불 시험을 당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솔로몬은 한 평생을 다 산 다음 하나님의 선물과 인생의 본분은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성도들 때문에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모세도 아침마다 주의 인자로 만족하며 평생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자기의 기도 제목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은 기쁨입니다. 주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인생은 헛됨입니다. 인생은 기쁨임에도 불구하고 무상하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헛됨입니다. 모세는 인생을 아침에 돋는 풀과 같고 신속히 날아가는 살과 같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인생이 없는 것 같고 허사 뿐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이 이룩한 모든 성취 즉 부귀영화는 물론 사업도 학문도 지식도 모두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친구도 아내도 믿을 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절감했습니다. 바울은 훌륭한 가문도 탁월한 학문도 종교적 열성도 모두 배설물처럼 헛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이 이루어 놓은 대단한 성취도 그것이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면 불법을 행한 것과 같은 헛됨이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영원하고 가치 있는 것은 주님 자신 뿐입니다.
일곱째 인생은 떠남입니다. 인생은 떠남의 생활을 거듭하다가 결국 나그네의 생활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떠남은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감을 의미하고 하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삶의 마지막은 떠남이었고 바울의 삶의 마지막도 떠남이었습니다. 떠남을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긴 은사들을 마음껏 다 사용하고 가볍게 후회 없이 떠나야 합니다. 자리도 재산도 너무 오래 소유하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보물을 모두 하늘에 쌓은 후 가볍게 만족스럽게 떠나야 할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생 칠도를 터득하므로 이루어졌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합동신학교 명예교수
최근 저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성광). 「대강대강 사시오」 (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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