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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선교사 협의회 주최 세미나를 마치고"
정균오 선교사 (블라디보스톡 연해주 신학교 총무, 부흥교회 담임)
신록이 우거져 가는 계절이다. 이곳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 중의 한 순간이다. 김명혁 교수님을 모시고 3박 4일간(6월 6일-9일) 연해주 신학교에서 연해주 선교사 협의회가 주최한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여러 강사가 오셔서 하는 프로그램보다 더 깊이 있는 만남과 대화가 진행되었다. 특별히 신학교수이며 목사로서 60여 년이 넘도록 살아온 한 인간 김명혁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세밀하신 역사하심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속에 신앙과 인격의 신록을 우거지게 한 세미나였다고 말하고 싶다.
멀리 우스리스크에서 장명수 선교사님이 가장 먼저 모든 가족과 함께 휴가 겸 세미나를 듣기 위해 신학교에 도착을 하였다. 우리는 만남을 기뻐하며 오래간만에 모든 가족과 함께 피자로 점심을 같이하였다. 서둘러 오실 교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와 있었으나 오실 시간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다. 기다림에 거의 지칠 시간이 되어서 김건수 목사님이 교수님을 모시고 나타났다. 98년도에 이곳을 다녀가실 때 같이 비행기를 타고 나가며 대화를 한 후 거의 2년만에 뵙는 교수님은 여전히 젊어 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오신 분 같지 않게 매우 활력이 넘쳐 보였다. 짐을 풀자마자 몇몇 선교사님과 같이 신학교 옆에 있는 휴양소에 산책을 하였다. 휴양소는 이제 막 돋아난 연초록 색깔의 나뭇잎들이 우리를 기쁨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족관계와 후원교회들을 물으며 대화를 시작하였다. 막힘도 거리낌도 없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대화가 진행되었다. 우리는 숲 속을 거닐며 지나간 이야기들과 한국 교계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흔들 그네도 타고 다람쥐 구경도 하며 한가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면서 약 27명의 선교사님들이 모여들었다. 식사를 하고 첫 번째 만남의 시간이 되었다. 예정과는 달리 이 곳 "창신교회" 창립예배로 오신 신세원 목사님의 강의가 진행되었다. "무인불승 유인필승"의 목회 인생을 말씀해 주셨다. 많은 어려운 목회 선상에서 오직 참고 인내한 결과로 맺어진 승리의 목회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깊은 감동과 함께 참고 인내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였다.
강의가 끝난 후 김명혁 교수님과 함께 탁구 시합이 시작되었다. 별 어려움 없이 이길 것을 예상하면서...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교수님을 이길 수가 없었다. 열 게임을 하여 열 게임 모두를 지고 말았다. 60이 넘은 노인인지 20대 젊은이인지 모를 정도로 펄펄 나셨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찬 한 노인 젊은이를 만날 수 있었다. 찬물로 목욕을 하시고 12시가 되어서 숙소로 들어가심으로 하루를 마감하였다.
둘째 날, 아침 식사시간부터 강의가 시작되는 10시까지 제 1부 비공식 강의가 진행되었다. 본 강의보다도 더 진지하고 활기찬 대화가 진행되었다. 어린아이와 같이 꾸밈이 없고 진솔한 그의 삶 한 가운데로 들어가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게 되었다.
10시가 되어 첫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다. "인생은 만남과 나눔입니다"라는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만남을 만들어가고 만남을 깊이 있게 가꾸어 가는 그 분 자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늘 좋은 만남을 기도하고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살아가나 선교지에서 만남 때문에 받는 상처로 인해 거의 만남을 기피해 온 나에게는 상당한 도전과 충격이 되었다. 좋은 만남은 만들어져 가는 것임을 다시 깨달으며 만남을 만들고 가꾸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을 위해 나눔이 필요함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오후 시간에는 강의가 없으므로 교수님이 주신 책 "영 몰라 통 몰라 가르쳐줘도 몰라"를 읽었다. 심한 건망증 때문에 생긴 일들을 꾸밈없이 사실 그대로를 기록해 놓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배꼽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깊은 감동과 아울러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 김명혁 교수님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적극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주신 하나님이 더욱 빛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읽으며 그를 더 알 수가 있었다. '친구를 보면 그를 안다'는 말이 있듯이... 북한을 방문한 글들을 읽으며 그가 얼마나 북한 동포들을 순수하게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교수로서 훌륭한 제자들을 키웠고 그들로부터 진정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며 신학교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로서 어떻게 일해야 할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김 교수님은 오후에는 한인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저녁에는 러시아인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저녁에 다시 제 2회전의 탁구 경기가 펼쳐졌다. 먼저 정득수 선교사와 교수님의 경기가 있었다. 열 게임을 하여 6대 4로 정득수 선교사가 이겼다. 이것으로 끝이 난 줄 알았는데 다시 나에게 게임을 청하셨다. 이미 열 게임을 하였으므로 나는 더 많은 게임을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열 게임을 하여 겨우 한 게임만을 이기는 것으로 끝을 내야만 했다. 이날 역시 12시가 넘어서야 잠을 잤다.
셋째 날이 밝았다. 이날 역시 우리는 아침 식사 후 본 세미나가 있기 전에 진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10시가 되어 세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다. "인생은 기쁨입니다" 라는 주제로 김 교수님의 기쁘고 즐거운 이야기 마당이 펼쳐졌다. 강의를 들으며 어느덧 기쁜 마음으로 변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 좀 더 기쁘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였다.
강의를 마치면서 또 한 권의 책("즐겁게 살도록... ")을 나누어 주셨다. 말씀과 현실을 밀착시키고 있는 이 설교집은 내 생각에는 설교집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읽어 가는 중에 차츰 쉽게, 그리고 생활과의 적용이 뛰어난 설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어린이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주어졌다. 왠 노인 교수님과 어린아이들과의 만남일까 하는 의외의 프로그램이었으나, 이 날 선교사 자녀들은 교수님으로부터 선물을 한 아름씩 받아 들고, 게임, 농구, 시소, 그네 타기 등을 즐기며 행복에 겨운 오후를 보내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네 번째 강의가 진행되었다. "역사의식"에 관한 강의가 진행되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선상에서 바라보는 역사적인 안목, 특히 과거를 중시하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저녁 강의가 끝난 뒤 역시 탁구 시합이 진행되었다. 이 날 나의 목표는 두 게임을 이기는 것이었다. 열 게임을 했으며, 간신히 두 게임을 이길 수 있었다. 그 후 다시 정득수 선교사와 열 게임이 진행되었다. 5대 5로 비기는 것이 교수님의 목표였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6대 4로 지셨다. 이날도 역시 12시가 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넷째 날, 김회관 회장님의 간절한 청에 의해 교수님이 30킬로나 되는 돼지고기를 사시는 바람에 나는 마지막 강의를 듣지 못하고, '샤슬릭(숯불 꼬치구이)'를 구워야만 했다. 사슬릭을 굽는데 강의를 끝내시고 나오신 교수님이 20달러를 주시는 것이었다. 분위기를 보니까 모두에게 20달러씩을 주신 것 같아 황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책도 주시고 고기도 사 주시고 돈도 주시는 교수님의 모습 속에서 그가 주장하고 다니는 나눔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을 역력히 읽을 수가 있었다. 모든 선교사들은 이 날 교수님이 사 주시는 고기로 샤슬릭을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학점을 주시고 편애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교수님은 몇몇 사모님들과 함께 꽃 속에 묻히셔서 바다 구경을 나가셨다. 돌아오신 후 바닷가에서 돌도 주우시고 바다 가재도 사서 드시고 오셨다며 자랑을 하셨다. 천진 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저녁에는 내가 섬기는 "부흥교회" 청년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영어로 강의하시고, 영어 통역을 세웠다. 주안에서의 연합과 일치를 듣고 청년들은 깊은 깨달음을 받은 듯이 각자 기도 방에 올라가 자진하여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강의 도중 탁구를 하여 나를 이긴다는 말을 듣고 우리 교회 대표인 알렉이 정식으로 탁구를 도전하였다. 아주 우습게 이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러나 알렉은 여섯 게임을 하여 겨우 한 게임만을 이기고, 다섯 게임을 지고 말았다.
토요일 마지막 날 이날에는 강의가 없었다. 아침에 정득수 선교사와 함께 바다 가재를 대접해 드렸다. 그리고 나서 "요세 박물관"과 "아르센예프 박물관"을 둘러보신 후 몇몇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관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이 날 식사는 스승을 대접한다고 정득수 선교사 가정이 벼르고 벼른 날인데 교수님의 고집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루블이 부족한 것을 아시고 나에게 운전을 하여 루블을 기어이 바꿔서 마지막 식사비용을 지불하셨다. 그리고 남은 루블을 같이 식사한 선교사들과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식사 후 중간에서 내 차는 말썽을 일으켜 마지막 공항까지 배웅을 못하고 섭섭한 마음을 안고 그냥 돌아와야만 했다. 교수님은 정득수 선교사가 시무하는 아르쯤 장로교회 건축 현장을 둘러보시고 많은 감동을 받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번 세미나는 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의미있고 즐거웠다. 특별히 여러 명의 강사보다는 한 분의 강사를 모시고 깊이 있는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만남과 나눔, 즐겁게 살아야 하는 인생,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들이 다시금 새롭게 나를 깨우쳐 준 기회였다. 이 일을 위해 수고한 협의회 임원들과 소련 선교회, 특별히 이곳에 오셔서 직접 강의해 주시고, 책도 주시고, 돈도 주시고, 아름다운 삶을 나누어 주신 김명혁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처음 강의를 해주신 신세원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신록이 우거져 가는 계절에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신앙과 인격이 풍성해지고, 러시아 선교의 열매가 더 아름답게 맺혀지기를 기도 드린다. 좋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2000년 6월 14일에, 러시아 연해주 신학교에서 정균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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